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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다에서 만난, 내 첫 무늬 오징어

by igolly 2025.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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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냄새보다 짜릿했던 손맛 이야기)

1. 바다로 나가다

아침 공기가 살짝 차가워서, 숨을 들이마시면 코끝이 시원하게 얼얼했다. 마치 겨울이 오기 전, 바다가 마지막으로 보내주는 손편지 같은 날씨랄까. 친구가 무늬  오징어 낚시를 가자고 했을 때,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했다. 오징어면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배를 타고 나가니, 파도는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밀려왔다가 내 발밑에서 스르르 녹아내리고, 바다는 은빛 비늘을 뿌린 듯 반짝거렸다. 그 순간, 뭔가 오늘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2. 무늬 오징어 낚시 채비, 어렵지 않아요

‘채비’라는 말이 처음엔 무슨 무기 같은 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낚시 장비 세팅을 말하는 거였다. 나는 완전 초보니까, 낚시 고수 친구가 다 알려줬다.

  • 낚싯대 : 에깅 전용 로드. 가볍지만 끝이 예민해서 무늬  오징어 가 살짝 건드려도 “톡” 하는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 : 스피닝 릴 2500번. 드랙 조절이 부드러운 게 중요하다고 했다. 무늬  오징어 가 달아날 때 드랙을 너무 조이면 줄이 끊어질 수 있거든.
  • 라인 : PE합사 0.8호. 얇지만 강해서 멀리 던져도 안정적.
  • 쇼크리더 : 카본 2호, 50cm 정도. 이게 없으면 합사가 잘려버릴 수 있다.
  • 에기 : 갑오징어 전용 인조미끼. 새우 모양에 화려한 색을 입혀서 바닷속에서 눈에 확 띄게 만든다. 친구 말로는 색깔별로 상황이 다르다는데, 나는 그냥 예쁜 걸로 골랐다.

채비를 다 맞추고 나니,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 전신 갑옷을 입은 기분이랄까.

3. 첫 입질, 그리고 심장 박동

낚싯줄을 휙 던지고, 에기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다음은 ‘폴링’—살짝 튕기듯 들어 올렸다가 다시 가라앉히는 동작을 반복하는 거다. 처음엔 솔직히 지루했다. 바닷속은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바람만 ‘슥슥’ 스쳐 가니까. 근데 10분쯤 지났을까, 낚싯대가 ‘툭’ 하고 울렸다. 마치 누가 손끝을 장난스럽게 잡아당긴 듯. “왔어!” 친구가 소리쳤다.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아니 쿵쾅쿵쾅 뛰었다. 손목에 힘을 주고 천천히 감아 올리는데, 줄 끝에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던 ‘손맛’이구나.

4. 물 위로 떠오른 무늬 오징어

수면 위에 그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생각보다 훨씬 귀여웠다. 통통한 몸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눈은 동그랗고 호기심 가득한데, 한편으론 “여기 왜 끌려온 거야?” 하고 묻는 듯했다. 그 순간, 물 위로 먹물을 ‘푸슉!’ 하고 뿌렸다. 내 장갑이 먹물로 물드는 걸 보면서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바다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5. 회와 숙회 사이, 행복한 고민

배 위에서 바로 회를 떠먹을까, 집에 가서 숙회를 할까 고민했다. 결국, 친구가 손질해 준 회를 간장 와사비에 찍어 한입. 와, 세상에. 씹을수록 달큰한 맛이 퍼지고, 이건 그냥 바다의 사탕이다. 숙회를 해도 부드럽고 고소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날 이후로 무늬  오징어 회파가 됐다.

6. 바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낚시가 끝날 즈음, 해는 이미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바다 위에 퍼진 주황빛이 마치 누군가 붓으로 한 번에 쓱 칠해 놓은 것처럼 고와서, 나는 잠시 낚싯대를 놓고 바라만 봤다. 육지에서는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지만, 바다 위에서는 시간도 파도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무늬  오징어 한 마리를 손에 쥔 채, 오늘 하루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어떤 날은 잔잔하고, 어떤 날은 거칠고. 무늬  오징어 낚시도 그렇다. 오늘은 웃게 만들지만, 내일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자꾸 다시 오고 싶어진다. 다음번엔 또 어떤 바다가, 어떤 오징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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