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의 여름, 어디로 떠날까?
여름 냄새, 맡아봤어요? 장마 끝물의 눅눅함이 사라지고 햇살이 뜨거워지는 순간, 사람 마음도 슬금슬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져요. 3박 4일. 너무 짧지도 않고, 그렇다고 짐 풀기만 하다 끝나지도 않는 시간. 그 시간 안에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여름의 이야기’예요. 말 그대로, 여름을 기억하게 해줄 무언가 말이죠.
1. 제주도 – 여름은 섬에서 다시 태어난다
제주는 여름이 되면 살짝 들뜬 듯해요.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주인공이 되어서 협재 바다를 걷고, 우도 자전거 위에 몸을 맡긴 채 바람에 실려가는 느낌. 사려니숲길의 초록빛은 눈을 씻겨주는 필터 같고요. 중산간이라는 단어조차 이국적으로 들리는 곳. 아, 그리고 비자림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조용히 걸어야 할 것 같아져요. 꼭 누군가 나무 뒤에서 날 지켜보는 듯한, 그런 숲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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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수 & 순천 – 남도의 낭만은 밤에 진해져요
여수 밤바다. 진부한 말 같지만, 걷다 보면 괜히 조용해지고 괜히 말수가 줄어요. 오동도 동백숲에선 이상하게 연애소설 읽고 싶어지고, 케이블카는… 글쎄요, 약간 놀이기구 느낌도 있지만, 생각보다 잔잔해요. 그리고 순천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확 바뀌어요. 국가정원의 단정함과 습지의 푸르름.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올 것 같은 연못 위 나무다리를 걷는 느낌.
알고 있었나요? 순천만 습지는 철새들의 겨울 별장이라는 사실. 여름엔 그들의 흔적만 남아요. 그러니까, 살짝 쓸쓸한 느낌이랄까.
3. 강릉 & 동해 – 커피 향과 파도 소리 사이에서
강릉은 ‘감성’이란 단어랑 참 잘 어울려요. 안목 해변 커피거리에서 바다를 보며 라떼 한 모금 들이키면, 그건 거의 영화 비포 선셋이죠. 아, 갑자기 누가 옆에 와서 말을 걸어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요. 경포해변에서 해수욕을 하고, 주문진 시장에서 활어회 한 접시 들고 바닷가에서 먹는 그 쾌감은 어른들의 소풍이에요. 조금만 내려가면 정동진, 묵호항, 그리고 바다열차. 기차가 해변 따라 달리는 거, 상상돼요? 거긴 아직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요.
4. 남해 & 통영 – 남쪽 끝에서 느릿하게, 느릿하게
남해는 마치 오래된 필름카메라 같아요. 약간은 흐릿하고, 굳이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분위기. 독일마을의 이국적인 붉은 지붕, 다랭이논의 계단식 논은, 딱히 멋을 내지 않아도 보는 이의 마음을 묘하게 건드려요. 통영에선 리틀 포레스트가 아니라 인생은 아름다워 느낌. 벽화마을을 걷다 보면 동화책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고, 미륵산 케이블카에 오르면… 세상에, 바다가 하늘보다 가까워 보여요. 진짜예요.
참고로, 통영 중앙시장에선 충무김밥이 짱이에요. 하지만 멸치쌈밥도 꼭 드셔보세요. 의외의 발견.
5. 경주 & 포항 – 고요함과 짭조름함 사이 어딘가
경주는 시간이 눌러앉은 도시예요. 대릉원 돌담길을 걷다 보면, 마치 옛날사람이랑 마주칠 것 같은 착각이 들죠. 첨성대는 별을 보기엔 너무 작지만, 별을 보던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요. 황리단길에선 커피도 맛있지만, 골목 냄새가 좋아요. 향수랄까, 그리움이랄까. 그리고 포항. 호미곶의 바람은 도시의 무게를 훅 밀어내요. 죽도시장에선 회보다 튀김이 더 맛있고, 영일대 해변에선 바다가 말 없이 등을 토닥여요.
뭔가 이상하죠? 고도와 항구 도시를 하루 차이로 왔다 갔다 하는 건, 두 개의 계절을 한꺼번에 사는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어디든 좋아요
사실 어디든 괜찮아요. 바다든, 산이든, 혹은 아무 것도 없는 골목이어도. 중요한 건 우리가 그곳에 있다는 거고, 생각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여름은 꼭 뭔가를 해야만 하는 계절은 아니에요. 그냥 좀 웃고, 좀 걷고, 좀 멍 때리면… 그게 여름이죠.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 기차 안, 차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다음엔 어디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