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 끝, 조용히 앉아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이상하게도 요즘엔 그게 제일 좋다. 스무 살 땐 몰랐던 감정이, 마흔을 넘기니 조금씩 찾아온다. 그렇게, 한국문화가 어느샌가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전통 속에서 찾는 내 속도
요즘엔 자주 한옥에 간다. 친구들과 한옥 스테이를 하며 나무 냄새 맡고, 다도 체험도 하고, 전통주 한 잔 기울이며 잠깐, 아주 잠깐… 세상이 멈춘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전통이냐” 하지만 그 ‘옛것’이 주는 묘한 위로가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는 걸 말없이 알려주는 듯한 느낌.
사극을 보다 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옛사람들의 말투나 풍경이, 문득 우리 부모님 세대가 흘렸던 땀냄새랑 닮아 있어서일까. 전통은, 그저 과거가 아니라 내 삶을 다듬는 조각 같기도 하다.
화면 속에 펼쳐진 또 다른 한국
요즘 넷플릭스 켜면, 진짜 볼 게 많다. <모범택시>, <우영우>, <더 글로리>… 하나같이 몰입감 장난 아니다. 근데 그걸 혼자 보는 게 아니라, 가족이랑 나란히 앉아 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화도 튼다. “저건 너무 속 시원했어” “저런 세상이 어딨어?”
미디어가 단순히 시간 때우는 도구는 아닌 것 같다. 드라마 한 편이 때론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다큐 하나가 나도 몰랐던 한국의 구석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라디오도 요즘 다시 듣는다. 익숙한 DJ 목소리가 출근길을 묘하게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유튜브는 또 다른 세상. 건강, 요리, 여행, 심지어 고전 문학까지. 클릭 한 번이면, 지식이랑 웃음이 동시에 배달된다.
예능은, 나를 웃게 하는 마법
<유퀴즈 온 더 블럭>, <나 혼자 산다>, <편스토랑> 같은 프로그램 보면 그냥… 피식 웃게 된다. 그 웃음이 참 고맙다. 인생 별 거 없다는 듯, 고군분투하는 누군가의 일상이 마치 내 모습 같아서 더 와 닿는다.
요즘 예능은 옛날처럼 시끄럽고 정신없는 것만은 아니다. 차분히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게도 하고, 내가 놓쳤던 것들을 새삼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좋은 건, 이걸 가족이랑 같이 본다는 점. 자녀랑 보다가 갑자기 “아빠 어릴 땐 말이지…” 이런 이야기가 시작된다. 웃기지. 하지만 그게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생각할 거리 하나, 남겨두기
문화란 게 꼭 대단한 건 아니구나 싶다. 찻잔 속의 바람처럼, 조용히 들어와 내 일상에 파문을 남기는 것. 40대인 나는, 이제서야 그걸 조금씩 느낀다.
요즘 사람들은 묻는다. “한국문화는 어디까지 갈까?” “K콘텐츠, 이대로 계속 인기 있을까?” 글쎄. 그건 모르겠다.
다만, 나는 오늘도 사극을 보고, 한옥을 찾아가고, 예능에 웃다가 가족과 밥을 먹는다. 그게 ‘한국문화’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삶이 꽤 괜찮다는 건 분명하다.